영화 <베리드>입니다. 실험적인 영화라기에 꼭 보고 싶었는데 몇 년이 지난 이제야 보게됐습니다. 런닝 타임 내내 한 장소에서 한 명의 배우가 풀어가는 영화. 관객을 95분 동안 충분히 몰입시킬 수 있는 영화입니다. <베리드>를 보고 나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실험성, 연출력, 연기, 스토리도 아닌 대사 한 마디였습니다.
"I'm sorry."
마지막 대사 또한 충격적입니다.
"I'm sorry, Paul. It's Mark White."
제가 왜 이 대사에서 좌절감을 느꼈는지 아마 영화를 보면 아실 겁니다. 당신이 보통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찝찝한 기분일 겁니다.
주인공은 미국의 한 시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미국이 아니라 일개 국민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인공은 생존의 기로에서 극도로 공포에 떨고 있지만, 도움을 요청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사무실에 앉아' 여유있고, 건조하게 말합니다.

기다려라, 침착해라, 조취를 치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믿어라...
심지어 주인공 회사의 인사팀 임원은 회사의 손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주인공에게 전화를 해 친절하고 신속하게 해고절차를 진행합니다. 그들은 모두 한 시민의 목숨보다 국가 이미지에 대한 타격을 더 걱정하고, 한 직원의 목숨이 괜한 기업 손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빈틈없이 일처리를 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과 더 가깝기 때문에 씁슬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냅니다. 한 마디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남의 일이 아닌 것이죠.
그들은 시종일관 주인공에게 미안하다 말합니다. 정중하고, 건조한 태도로. 주인공이나 제가 묻고 싶은 말은 그래서 '지금 무얼 하고 있나'입니다. 사과할 필요없으니 지금 당장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같습니다. 미안하다. 그리고 주인공의 목숨을 끝내 지키지 못한 순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무리 백 번, 천 번을 외쳐도, 그에 따르는 행동이 없으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죠.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영화를 보지도 극장에 가지도 않는다면, 그건 좋아한다고 할 수 없죠. 따라서 주인공에게 한 미안하다는 말들, 거의 쓸모가 없는 것일뿐입니다.
혹시 힘 있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불쾌하셨다면, 저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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