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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영화-

[부당거래] 나는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변할 거라 믿는다. (스포 주의)






<1>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처음 봤는데 영화가 끝나고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19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갈 정도로 재밌었다. 가끔 이렇게 빠른 영화는 결말이 허무하거나 너무 가벼워서 여운이 안 남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부당거래>는 빠르면서 묵직하고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2>
 
<부당거래>의 서브타이틀은 '대국민 조작 이벤트' 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권력을 쫓는 사람이 각자의 권력을 위해 만들어가는 조작 사건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의 내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 어쩌면 상당 부분이 '팩트'에 근거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1) 재벌 대기업 회장과 검사의 유착 2) 특정 학연에 따른 승진 3)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하는 이벤트성 사과 4) 고위층에서 이용해먹을 사람을 먼지 털어서 약점 잡은 후 협박 또는 회유 5) 검사와 경찰간 대립 6) 경찰과 조폭의 유착 7) 검사와 언론의 유착 8) 정의가 아닌 이해관계에 따른 수사 9) 국선변호인 제도의 현실 10) 재벌가와 검사간 즉 상류층끼리의 혼인 11) 검사의 보복성 털기수사 12) 처벌받지 않는 권력 등등

이런한 일들이 과연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3>

영화의 완성도가 높았다고 느낀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이었다. 황정민, 류승범은 말할 것도 없고 유해진, 천호진, 마동석부터 미친존재감의 송새벽과 국선변호인 역의 황병국까지 그 외에도 모든 조연, 단역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탄탄했다. (까메오 출연한 이준익 감독만 빼고 ㅋㅋ)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볼맛이 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4>
 
<부당거래>에는 '착한 놈'은 나오지 않는다. 선과 악, 즉 황정민 대 류승범 구도가 아니란 뜻이다. 황정민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저 한 명의 실력있는 경찰관이다. 어느 날, 권력과는 연이 멀었던 그에게 핵심권력과 '다이렉트'로 연결될 수 있는 매우 달콤한 그러나 매우 치명적이고 비윤리적인 제안이 들어왔다. 황정민은 그것을 거부하고 소신을 지키는 우월한 도덕성까지 겸비한 착하고 멋진 주인공이 아니다.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는 한 명의 소시민을 뿐인 것이다. 악 혹은 권력은 항상 선이나 정의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권력은 일상의 많은 소시민들과 대립하고 있다는 메세지이다. 우리 중에 영웅같은 사람만이 권력에 맞서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5>

<부당거래>가 전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성찰이다. 대국민 조작 이벤트를 수행 중인 마동석이 황정민에게 묻는다. "형님, 우리 잘 하고 있는 거 맞죠?" 황정민은 이렇게 합리화 한다. "지금 이 마당에 잘 하고 못하고가 중요하냐. 잘 하고 있다고 믿는 게 중요하지." 이런 황정민이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면서 결국 권력에 편입한 후, 류승범에게 묻는다. "검사님, 우리가 정말 잘 했다고 믿습니까?" 류승범의 대답은 없다. 대답은 관객의 몫인 것 같다. 

영화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않았다. 결론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다. 류승완 감독도 직접 말했듯이 영화는 런닝타임 내내 직접 어떤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했고, 내용 자체만 충실히 전달하려 했다. 그 안에서 판단 또한 관객의 몫이다. 그러나 은연 중에 감독의 뜻도 나타내는 것 같다. 이를 테면, 황정민과 유해진이 건물 옥상에서 '부당거래'를 하면서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 건물에는 '조선일보'가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또 영화 초반 황정민의 대사에서도 말이다. "니네같이 법 안 지키는 새끼들이 더 잘 먹고 잘 살어." 



<6>

영화 말미에는 정의가 아닌 철저히 자신의 권력을 위해 살아가는 검사 류승범의 비리가 밝혀진다. 그러나 재벌가 회장인 장인의 도움으로 흐지부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면서, 너무도 화창한 서울의 전경이 나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소름돋는 엔딩장면이었다. 썩은 권력은 공포다.

영화가 끝나고 누군가는 냉소하
며 혹은 체념하거나 무기력하게 말할 것이다. 이런 영화가 나온다고 권력자들이 바뀌겠냐고. 그렇다. 썩은 권력은 여전히 악취를 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변할 거라 믿는다. 

영화 말미에 나온 말로 리뷰를 끝내고 싶다. 

"검사윤리강령 1조에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고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