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볼까 하다가 《패치 아담스》를 보기로했다.
패치가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선택했다.
자살을 기도했던 '헌터'는 제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헌터는 그 곳에서 '패치'라는 새로운 이름과 뜻하지 않게 새로운 삶의 행로를 발견한다. 패치는 예전의 자신처럼 고통 받고, 한없이 약해져 있는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단순히 의사로써가 아닌, 진심으로 환자와 연결되어 동등한 위치에서 인간적으로 만나 서로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의사가 되길 바랐다.
이후의 내용은 이러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주위 사람에게 설득하며 함께 실현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러한 패치의 모습을 보면서 성환이형이 떠올랐다.
그 두 명에게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1. 기존 시스템에 대항하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
2. 보통 사람에게는 실현하기 힘든 '로맨틱'하고 이상적인 가치로 보인다.
3. 정당하지 못한 권력이나 권위와 대면해도 거침 없다.
4. 자신의 가치를 다른 사람과 함께 이루기 위해 그들을 설득한다.
5. 말로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능력이 있다.
6. 다른 사람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7. 자신의 가치에 몰입해 있고, 실현하기 위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패치와 패치가 설득한 사람과의 관계가 성환이형과 나의 관계와 거의 같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패치를 보며 곰곰히 생각했다.
- 패치가 꿈꾸는 병원을 세우고 그 이후의 모든 것은 패치를 중심으로 돌아가겠지?
- 애초에 그것을 꿈꾼 사람은 패치이기 때문에 가장 명확한 이상을 갖고 가장 열정적인
노력을 할테니 당연하 것이지.
- 패치의 친구들은 시간이 더 흐른 후 어떻게 될까?
- 권력의 시녀가 되는 길 대신 가치 있는 길에 들어섰지만 패치라는 '스페셜 원'이 항상
존재할텐데.
- 패치가 부재할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 세월이 흘러도 변함 없이 패치가 제시했던 가치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까?
- 하긴 그들은 의사니까 다시 돌아갈 자리가 있겠지.
패치가 설득한 사람 중 한 명인 '캐린'이 그의 설득으로 같이 일하기 전, 그에게 했던 말이 있다.
넌 꼭 시스템보다 나은줄 알지만 사실 너는 비순응주의자야.
하지만 패치는 그 말이 틀렸음을 결국 멋지게 입증해낸다. 하지만 나의 경우로 돌아와서 보자. 성환이형은 패치처럼 실제로 시스템보다 나은 사람일지 모르지만, 나는 말그대로 비순응주의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솔직히 참 힘들다. 권력의 시녀 역할, 시녀 중에서도 시녀 노릇을 하는 것은 어떤가. 차라리 눈에 안 보이는 권력 밑에서 기생하는 것은 어떤가. 지금 이 시점에서 누구보다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든다.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면 포스트잇 떼어내듯 흔적도 없이 떨어져 나왔을텐데.
내가 이렇게 못 견디는 것이 배은망덕인가.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배은망덕인가.
비겁하구나.
초라하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보고 내가 풀어놓고 싶은 것은 지금부터다.
패치는 정신병원에서 만난 한 노인으로부터 심오한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말로 인해 패치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해결책을 볼 수 없다네.절대로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말게.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봐야해.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순응과 게으름 때문에보고싶어하지 않는 것을 보도록하게.
매일 세상을 새롭게 보게.
영화가 끝나고 이 대사를 곱씹어봤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마라. 문제 너머를 봐라.' 지금 내 앞에 가장 가까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봤다.
- 11월에 시험이 있다.
- 그 시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 기간이 촉박하다.
- 남은 기간 동안 하루종일 붙잡고 있어도 점수가 나올지 의문이다.
- 그런데 공부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니다.
- 부모님의 돈과 기대가 걸려있다.
결국 지금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불보듯 뻔한 시험실패 때문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나는 '실패'를 무척이나 두려워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실망에 대해 뭄척이나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의 문제의 초점은 '실패'와 '불안'이었다.
문제를 규정짓고 초점을 인지한 뒤, 그 너머를 생각하기 시작하자 확실히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활기를 되찾은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이전보다 좋아졌다. 마치 진정제를 맞은 것처럼. 내가 이 시점에서 이 영화를 선정해서 본 이유가 적중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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