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내내 배우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영화다.
더구나 장면 한 번 안 바뀌고 한 장소에서 완성된 영화다.
이렇게도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 신선한 영화였다.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 것 같은데, 제목이 《맨 프럼 어스》 이다.
보는 이에 따라 B급이니, 삼류니 하는 평가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과할 정도의 단조로움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다는 사실에 놀랐다.
영화를 초간단하게 설명하자면,
1만 4천년을 살아온 한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다는 내용이다.
물론 영화 속 주인공의 주변인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못한다. 그런데 상호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면서 명쾌하게 그 이야기의 허구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각 분야의 석학이지만 깔끔하게 증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설득된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를 간단하게 말하고 싶다.
하나는 종교의 문제이다.
주인공과 논쟁아닌 논쟁을 하면서도 기본적으로 '그래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지'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종교의 문제에서는 달라졌다.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거나 분해서 눈물이 날정도로 절대적으로 부정한다. 주인공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부처에게 실제로 가르침을 받고 서방에 전파하려던 사람이며 그가 곧 예수라는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예수의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과장되어 있고, 허황된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대학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어릴 때는 괜찮은데 이제는 종교얘기 함부로 하면 안돼. 만약 너한테 설득 당하면, 걔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거든. 큰일나."
신입생 때, 『다빈치 코드』를 읽은 후,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동기 한 명과 살짝 논쟁했던 일을 말하고 들었던 것이다.
다른 모든 분야와 비교해서 종교는 뚜렷한 차이를 갖고 있다.
믿음이다.
단순히 'A는 B이다'라는 것이 정답이라고 알고 있는 수준보다 높은 차원이다. 남이 알려준 사실이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 삶으로 믿는 것이다. 신의 허구를 입증한다는 것은 곧 나에 대한 허구를 파헤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만큼 강한 믿음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일면을 철저히 외면할 수 밖에 없는 믿음이다.
이어서 말하려는 다른 하나는 지식의 관한 것이다.
나는 지식의 양면성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이 태고적 이야기를 꺼내자 그건 '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라고 반응한다. 흔히 인식하듯이 우리가 태고적 시대를 경험하지 않고도 그 시대를 알 수 있고, 우주에 가보지도 않고서 우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지식 덕 분이다. 그런데 약간 삐뚤게 생각하면 우리가 배웠다고 하는 많은 지식들이 먼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면 순식간에 흩어지거나 사라지는 먼지. 내가 배운 그 지식이 물론 '사실'이겠지만, 나는 그 '사실'을 실제로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다.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것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사실'이 되고, 내가 그것을 배우면 나는 그것을 전혀 모름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실'이 되고, 곧 지식이 된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괜한 것으로 딴지를 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실제로(?) 1만 4천년을 살아온 주인공 앞에서 석학들이 고대에 이랬고 저랬던 이야기를 실제로 자신들이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아무튼 이 영화를 통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위에 내용이 아니다.
1만 4천년을 살아온 주인공의 삶이 부러웠다.
한 등장인물도 지적하듯 주인공은 우리보다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시간'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배움'은 그 '시대'의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가 지나면 쓸모 없는 것으로 변한다며 '일반인'을 위로했지만, 어쨌든 나는 더 많은 시간은 더 많은 배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갔다.
그것이 왜 부러운지 생각해봤다.
그것은 곧 나에게 '남보다 우월한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 공공의 이익과 사회적 약자에게 기여하며 살고 싶은 나에게 그런 욕망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평소 한국사회의 천민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이런 욕망을 갖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그러한 욕망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한 의식을 갖고 살고자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즉 나는 내가 권력을 쥐거나, 권위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만, 그렇다해도 그것을 악용해서 탐욕을 부리거나 나 혼자 배부르고 싶어서 갖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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