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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기술-/중앙대 연극학과-

[4주차] 전공수업의 위엄

3주차는 추석으로 휴강. 

9/25, 오늘 4주차 수업이 시작됐다. 

한 주를 쉬어버리니까 재미와 설렘이 옅어지고, 

첫 수업을 앞 둔 것 마냥 다시 긴장과 불안이 짙어졌다. 

사실, 이런 불편함은 연기를 배운다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나 홀로 외딴 섬처럼 존재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연습실에 도착. 

오늘도 뻘쭘하게 앉아 교수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근데 학생들이 저번보다 더 많이 빠졌다. 

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결석한 거지?

이쪽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가?


1. 

오늘 가장 아쉬웠던 점은 다같이 스트레칭하고 몸푸는 과정이 없었다는 것. 

바로 <램프의 요정> 리딩에 들어갔다. 

저번 시간에 <램프의 요정> 안 할 것 처럼 말씀하셔서, 

<울고 있는 저여자>만 맹연습했는데..

그래도 내 차례까지 오지 않은 게 아쉬웠다. 


2. 

본격적으로 연습할 파트를 나누는 시간. 

사실, 남녀가 짝을 이뤄 주고 받을 수 있고 내용도 흥미로운 <램프의 요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컷 연습한 까닭에 그리고 좀 더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울고 있는 저 여자>를 택했다. 

그런 다음, 대본 속 자기가 맡을 파트를 고르는 시간. 

사실, 첫 리딩이라는 의미 때문에 가장 애착이 가고 가장 공들여 연습한 마지막 파트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하이라이트이자 피날레인 마지막 파트이기에 하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안 나왔다. 

타학과 초짜인 내가 하겠다고 말하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이 계속 쓰였다. 

눈치를 본 것이다. 

결국 다음 순위로 하고 싶었던 파트를 놓치고 놓치다가 선택했다. 


3. 

간단한 연습한 후, 결코 간단하지 않은 중간 점검 시간. 

처음으로 연극학과 전공수업의 위엄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내 순서까지는 오지 않았다. 

교수님의 감독 하에 학생들은 한 문장 이상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아니, 그 한 문장을 시작하기 조차 매우 험난했다. 

대사 연습만 실컷 했는데,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대사 시작 전, 끝난 후, 사이 사이가 대사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속으로 연거푸 '와 진짜 이거 장난아니다' 라는 말이 나왔다. 

첫 수업 때, 나에게 '용기 있으시네요' 라고 말해준 분이 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오늘 비로소 실감했다. 

무섭고 살벌했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얼마든지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잘 못하면 혼 나는게 차라리 맘이 편한 거였다.


4. 

오늘 배운 것 정리. 

 

<배우의 자세>

1)

배우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매우 디테일한 부분까지 의식하면서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무대에서 소리지르고 난리법석을 떠는 미친 사람 연기를 한 후,

돌아서면서 '어후, 후련해' 하는 사람은 연기를 한 게 아니다.

'뒤쪽까지 전달이 잘 됐을까, 다음엔 손을 이렇게 해볼까, ...' 라는 성찰이 있어야 배우라 할 수 있다.

2)

배우의 연기는 절대 리얼이 아니다.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자연 '스럽게' 하라는 뜻이다.

'자연' 그대로가 아니다.

관객에게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과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의 차이를 구분해라.

 

<연기와 호흡>

1)

연기란 생각과 느낌이 호흡에 실려서 몸, 소리,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숨으로 숨을 쉬어라.

호흡으로 생각과 감정을 마시는 것이다.

연기로 숨을 쉬면 어색해 진다.

숨을 쉬기 위한 호흡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호흡으로 대사가 연결되는 것이다.

 

<배우의 발성>

1)

소리는 입으로만 내는 게 아니다.

코, 미간 등 얼굴에도 공기 구멍이 있다.

소리를 입이 아닌 얼굴 중상부(입 위의 얼굴 부분)로 발사한다는 느낌으로 내라.

2)

배우의 목소리는 무게감 + 가벼움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대사의 해석>

1)

대사가 다운되면 (갑자기 숨죽여 말하면) 관객이 장면 전환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2)

대사 자체에 중심이 실리고 직설적이라면,

화술에 얼마든지 변화를 줘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일상어를 연기할 땐,

화술도 일상적인 틀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똑같이 일상의 흐름 속에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쉽게 말해, 일상적인 범위 내에서 반전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3)

대사 자체보다 대사하기 전과 후가 훨씬 더 중요하다!

대사를 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관객은 배우가 그냥 대사를 잘 하는 것인지, 몰입이 돼 있는지 바로 구분해 낸다.

예를 들어, 기교와 기술에 능한 가수는 단지 노래를 잘 한다는 인상을 주지만,

노래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가수는 그 노래에 흠뻑 젖어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