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용어를 서슴 없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십중팔구 아래의 범주 중 최소 한 가지에는 속한다고 생각한다.
- 메이저 언론(조, 중, 동)만 보는 사람
- 언론이 주는 정보를 여과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
- 한국의 진보는 북한을 찬양한다고 믿는 사람
- 스스로의 고찰 없이 부모님이나 일부 (기자, 교수, 유명인사 등) 어른들의 정치관념을 자신의 생각으로 알고 있는 사람
- 다른 의견을 잘 듣지 않고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만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
- 시민단체들은 무조건 국가정책에 반대한다.
- 한국의 진보단체들은 국가를 전복시키려고 한다.
왜 하필 저 7가지이냐.
불과 09년도까지 내가 그랬다.
주변 사람들이 좌빨 좌빨 하니까 나도 가끔 한국진보를 폄하하는데 동참하면서 잘 알지도 못한채 좌빨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한동안 시민단체와 협업하면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내가 여태껏 잘못 생각했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시민사회단체가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계속 무시하기 때문에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메이저 언론과 뉴스에서는 이런 목소리에 등돌리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내보냈다.
그러면 대중은 꼭 정부가 뭐만 발표하면 시위하고 난리친다고 오해하게 된다.
권력이 국민의 한 쪽 눈을 가리고 조종할 때, 시민사회단체는 계속 그 이면을 들추고 밝히려고 했다.
권력이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일 때, 시민사회단체는 힘 없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투쟁한다.
물론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순기능을 억제하고 권력의 보호막 같은 단체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운 좋게 좋은 뜻을 가진 단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굳이 논리적인 근거가 없더라도 나는 이 쪽이 옳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사소한 경험을 하고 나서이다.
유엔데이였다.
오후에 관련 행사가 있었고 맨 뒤에서 관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는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 강연에서 스텝일을 했다.
두 행사 분위기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유엔데이 행사는 외관상 화려하고 매끄럽게 잘 치뤄졌다.
참여자들로부터 의욕도 느껴졌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차가웠다.
레토릭이 아니다.
정말이다.
섣불리 판단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 곳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UN입사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을테고,
다시 말해, 개인의 성공을 바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동의 복지와 인권을 위해,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발전을 위해, 세계적인 환경보호를 위해
그러한 이상을 품고 자리에 참여한 학생들도 있었겠지만 진실하게 들여보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나도 UNDP에 가고 싶었으니까 그 심리를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한다.
설명하자면, 나는 나 스스로가 정말 순수한 이상을 위해 UNDP 입사를 희망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가진 풍요를 함께 누리고 어려운 국가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내 포장을 성환이형이 벗겨줬다.
그러한 거창한 이상에서 더 깊숙히 들어갔을 때, 진짜로 UNDP에 가고 싶은 이유는 나 개인의 명성을 위함이었다.
또 더 나아가서는 그것이 반드시 옳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정말 그 이상을 이루고 싶으면 지금 당장 실천해라.
UN입사를 위해 영어공부, 명문대학원 준비하는데에 시간 쏟지 말고.
그리고 꼭 그 이상이 UN에 들어가야만 실현되느냐?
그건 환상이다.
UN은 공무원 집단이고 관료주의 시스템이다.
니 꿈을 마음껏 펼치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
니가 그러한 일에 진정 보람을 느낀다면 지금 당장 관련 분야에 시민사회단체에 찾아가라.
그게 아니라면 솔직하게 스스로의 욕망을 인정하고 UN에 들어갈 준비를 해라.
국제개발이라는 용어에서 '개발'이라는 말이 과연 합당한 것이냐?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다분히 수여자 중심적이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개발'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짜 개발이냐?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그 곳의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거라고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그래서 차가웠다.
개인의 성공을 욕망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는 열정적인 것 처럼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차가웠다.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 강연.
신영복 교수님의 말씀이 시작 되고 실내는 조용해졌다.
나는 맨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신영복 교수님 말씀에 집중하다가도 계속 청중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좀 전에 다른 행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고요했지만 따듯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성공하고, 더 잘 살고,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에 대한 조언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해지고, 내 아이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이었지만 이 곳의 사람들은 최소한 이 시간만큼은 편안한 가운데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따듯했다.
모두가 신영복 교수님을 온화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나 혼자 그 분위기에 집중했다.
그 당시 그 광경이 아름답기까지하다고 느껴졌다.
사소한 경험이었지만 아직도 뇌리에 남을만큼 내겐 인상적이었다.
좌빨이라고 다른 사람들을 폄하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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