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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나-

'게임 중독'과 '독서 거부'



중고딩 때 겪었던 게임중독증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온몸에 퍼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최근의 나의 게임중독현상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요즘 나는 현실도피를 위해 게임을 한다. 
게임을 하는 순간에는 상당한 즐거움을 느낀다. 
게임을 끝내고 나면 다시 극도의 긴장과 불안과 스트레스가 찾아온다. 



어쩌면 즐거움에 비례해서 허무함이 밀려온다. 
컴퓨터를 켜기 전부터 이미 허무함이 올 것을 스스로에게 예보한다. 
그러나 우선 쾌락을 맛보고 싶어 다시 게임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허무함에 괴로워하기를 반복한다. 



점점 증상이 심해짐과 동시에 문제의식도 커지면서 의도치 않는 시간이 생겼다. 
게임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른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말한다. 
즉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충분히 생겨도 독서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게임중독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껴 독서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다시 책을 손에 잡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내 삶에 있어 보탬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애초에 게임을 시작한 이유가 다른 것을 하기 싫어서였다. 
'다른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독서였다. 
일부러 하기 싫었다. 
올해 내 삶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던 시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책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게임을 하면서 버리고 싶었다. 
나의 선택에 회의감을 느껴 게임에 손을 댔는데, 
다시 게임에 기댄 생활에 회의감을 느껴 책을 잡는다면, 
또다시 나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는 듯한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망설여진다. 
또다시 나의 선택을 부정하는 듯한 몹쓸 기분이 들어서 망설여진다. 
잠시나마 게임에 손을 댄 나의 행동이, 
다시 책을 잡음으로써 완전히 부정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망설여진다. 



요사이 허무하게 흘려보낸 시간이 빚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허무했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슬쩍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은 아니고 신문과 시사지를 읽었다. 



게임은 역시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쾌락을 주는 도구이다. 
나에게는 '명불허전'이다. 
법적 제재 대신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는, 
'어머니의 잔소리'라는 대가만 치르면 되는 일종의 마약이다. 
'헛되이 보낸 시간에 대한 빚'이 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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