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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가족-

배우에 대한 일반인의 동경



우리형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다.
1월 30일, 나는 형의 연극을 보러갔다.
형의 대학로 첫 공연인《스트리트 가이즈》를 볼 때만해도 혹시 형이 실수하진 않을까 조마조마 했다.
그렇게 형의 공연 한 편, 한 편을 보면서 점차 형과 함께하는 동료배우들의 연기도 염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새 내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연기가 아닌 그 무대를 위해 무대 뒤에서 그들이 흘린 땀이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그들이 흘린 땀이었다.

연극이 시작됐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특성 상 연극의 정확한 시작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문제는 객석이 많이 남았다.
그나마 있는 관객 중 몇 명은 나처럼 배우의 지인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적도 있으니까.....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우리형이 하는 연극이 잘 되고 말고를 바라는 게 아니다.
물론 잘 되면 좋겠지만, 요점은 이거다.

우리형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그것은 연기다.
                   그리고 그 일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지금 하고 있다는 것.
요즘 20대가 가장 꿈꾸고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20대는 오로지 취업을 향해 간다.
물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장을 갖는 20대도 있다.
그런데 혹시 취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적성을 맞추진 않았는지 생각해볼 부분이다.

그럼 왜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다른 말로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안정적인 삶일까? 
정신적 안정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안정 아닐까?
청춘을 다 써버린 후에야 정체성을 고민한다면 그 때는 정말 늦은 건 아닐까?
남들이 다가는 길을 따라가면 미래가 좀 명확해질까?
그게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맞을까?

우리형이 연극배우라고 하면 주위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와!
아.....
내 생각에
첫 번째는, 평범하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다.
두 번째는, 뻔히 어려운 길을 왜 선택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형을 비롯한 동료배우들이 또래에 비해 한동안 더 배고픈 생활을 하고 더 불안정한 미래를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의 아홉은 우리형 같이 배우의 길로 들어선 사람을 동경할 것이다.
위에서 다들 반응은 다르지만 아마도 우리형에 대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은 부러워 할 것이다.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으며 다른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당분간 배고플지라도 온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대학로 무명배우를.

평범한 사람은  좁고 어려워 보이는 길을 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가니까 안정적으로 보이는 길을 선택했다.

형 나이가 어느엇 서른에 가까워지고 있다.
형 나이때에 취직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사회 초년생 답게 화이트 셔츠와 그에 어울리는 산뜻한 정장을 입고 있다.
이제 매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으로 돈 걱정에서 한 템포 여유를 찾았다.
부모님과 주위사람들을 대할 때 한층 더 편안하다.
사회생활의 스트레스가 압박하지만 삶의 안정이라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생각에 만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에 대한 일반인의 동경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연극은 일회성이다. 무대에 서기 위해 각본을 짜고 배우들은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대사를 외워 연습하지만 공연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연극만큼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 또 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하는 이유는, 설령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해도 꼭 하고 싶게 만드는, 연극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 때문이다.

- 『위로가 필요해』

책을 읽는 도중 이 문구를 보니 문득 형이 떠올랐고, 머리 속에 어질러져 있는 것을 그냥 쓰고 싶었다.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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