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채플린] 찰리 채플린, 레드 채플린, 빨갱이 채플린
2013. 12. 22.
[1]
<레드 채플린>은 당연한 말이지만 찰리 채플린을 소재로 한 연극이다.
하지만 찰리 채플린에 대해 잘 모른다면, 제목이 왜 '레드' 채플린인지도 잘 모를 수 있다.
채플린은 희극 배우로 유명하지만, 생전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에서 추방당한 인물이다.
즉 '레드 채플린'은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자면, '빨갱이 채플린'인 셈이다.
당시에 아인슈타인, 헬렌 켈러, 마틴 루터 킹도 채플린과 함께 명단에 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하하하' 웃을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하하하 거릴 수도 없는 일이다.
매카시즘이 '한 때' 미국을 휩쓸었다면 한국판 매카시즘 광풍은 현재까지도 거세기 때문이다.
오늘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종북좌빨', '빨갱이', '좌좀비' 낙인 찍기가 활발이 이뤄지고 있다.
그 사이 반대편은 '수구꼴통', '일베충'이 되어갔다.
본질은 점점 모습을 감췄다.
사실 나도 빨갱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위 선배 잘못 만나서 그 길에 빠졌었다.
사람들과 모여서 활동하고, 시위도 나갔다.
당시에 누군가 정치적인 얘기를 꺼내면, 내 입장을 단호하게 피력했다.
친구들이 사회이슈에 대한 어떤 입장에 대해 말하면, 근거를 대가며 진지하게 반박했다.
그 사람들은, 친구들은 그냥 가십거리 정도로 꺼낸 말이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부모님과도 각을 세웠다.
사춘기도 없이 얌전했는데 말이다.
이념에 빠지면 부모형제도 몰라본다는데, 내 얘기가 될 수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정답이라고 확신하면서 소통 없이 내 말만 한 것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내가 비판하고, 비난하던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지금은 이전의 뾰족했던 모습은 없다.
붕 떠 있던 나는 가라앉았다.
현실과 주변 환경에 의해 나 스스로 검열을 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최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안녕들하십니까' 운동이 퍼지고 있다.
<레드 채플린>은 이 시대에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연극이다.
[2]
<레드 채플린>은 이렇듯 '불온한' 채플린이 꿈속에서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꿈속에 나타난 그의 분신들은 채플린 안의 '빨간' 채플린을 색출해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체 검열이 시작되고, 동시대를 살았던 조선 최고의 만담가 신불출과도 조우한다.
제2차 대전 후의 미국에서부터 2000년대 우리나라까지 채플린의 여정을 담았다.
문제를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우리가 마주한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을 풍자하는 데 집중한다.
반대 되는 얘기만 하면 순식간에 빨간 딱지를 붙여버리는 형편 없는 나라야!
가난한 사람과 억울한 사람의 편에 서면 순식간에 빨간 페인트를 뿌려버리는 빌어먹을 나라야!
세상 어디를 가도 이 따위 나라는 없을 거다!
이 말은 채플린이 미국을 떠나며 던진 대사이다.
약 60년 전, 타국에서의 절규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적용되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왜 한 쪽만 때리느냐!
때린 데 또 때리면 아프단 말이다!
그쪽은 방금 전에 맞았으니 반대편을 때리란 말이다!
이 말은 나에게 '이제 레퍼토리 좀 바꿔서 욕해줘' 라는 말로 들렸다.
욕을 할 거면 지긋지긋한 빨갱이 대신 차라리 또 다른 딱지를 만들라고 말이다.
김제동 씨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다 정말 '경북' 사람도 '종북'이 되어버릴 판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궁금해졌어.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웃기는 상황들이 많은지.
누가 이런 웃기는 상황들을 만들었는지.
어떡하면 이런 웃기는 상황들을 없앨 수가 있는지.
요즘 세상은 사람들을 넋이 나간 것 마냥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거리로 내몰려진 사람들은 울 수가 없어 웃음만 나온다.
거리로 뛰쳐나간 시민들은 그저 웃음 밖에는 안 나온다.
웃긴 건, 내가 아니라 이 놈의 세상, 아니 이 놈의 지구 전체였어!
그렇다.
정말 웃긴 건, 채플린이 아니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들듯, 현실이 웃음을 만든 것이었다.
'아메리카'에, '일본제국'에, '대한민국'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위협이 된다?
국가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권력'에 위협이 될 뿐이다.
현재 전 세계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부자는 미국의 부자든 아프리카의 부자든 어디를 가든지 부자들의 모습은 같다.
반대로 미국의 노숙자나 아프리카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나 그 모습은 같다.
국가나 인종을 떠나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가 있을 뿐이다.
이제는 우주에 위협이 될까봐 걱정이라는 채플린의 말은 허탈하기까지 하다.
[3]
처음에 언급했듯이 채플린은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혔다.
하지만 채플린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을 뿐이다.
채플린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나와 너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었다.
정말 웃긴 건, 정말 나라에 위협이 되는 건, 정말 누구인지 또 다시 물어야 하는 시대다.
예나 지금이나 본질은커녕 있는 그대로의 세상도 보기 힘든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찰리 채플린이 아니라 레드 채플린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채플린에 대해 더 많이 알았다면, 잔재미를 더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 같은 자신의 작품을 자체 검열하는 장면부터
<키드>의 꼬마나 <위대한 독재자>의 연설 등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한 편으로 아쉬웠다.
배우들은 발성만큼은 시원했지만, 중간 중간 크고 작은 실수가 있었고,
배우들끼리의 '합'이 잘 느껴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연극 전체로 봤을 때, 완성도에서 약간 아쉬웠고,
공연 정보
1. 웹진 도요 : [서울게릴라극장] 레드채플린
2. 플레이디비 : 레드 채플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