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기술-/중앙대 연극학과-

[9주차] 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봄엔꽃을 2013. 10. 30. 15:30


8주차는 중간고사였다. 

연기수업은 중간고사 없이 그대로 진행됐다. 


난 몰랐고 안 나갔다. 

사실 알려고 안 했다. 

알았어도 안 갔을 거다.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7주차 수업 때의 시연...

재현할까봐 두려웠다.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난 연기를 글로 배우고 있다. 

쉬는 동안 많은 [호외] 포스팅을 하면서 글로 공부했다. 


딱 한 번 폰으로 내 연기를 레코딩 해봤다. 

거울 보면서 점검한 것과 차원이 달랐다. 

레코딩은 스마트폰이라는 제3의 눈이 나를 본 것이지만, 

거울을 보는 눈은 어쩔 수 없이 내 눈이기 때문이다. 

레코딩 속 내 모습은 진짜 힘없이 축쳐져있었다. 


배우가 자연스럽다는 건 자기 몸이 풀려있다는 게 아니라, 

자기는 경직됐을지라도 관객이 보기에 편하다는 뜻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 몸을 보니 비로소 이 말이 와닿았다. 

또 레코딩 속 내 모습은 눈알이 갑자기 획획 돌아갔다. 

그리고 가끔 속사포처럼 눈을 깜빡였다. 

공부한 내용에 의하면, 거짓 연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근데 거짓이든 진실이든 사실 그 이전에 내게 문제가 있다. 

평소에도 눈알이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지적해주신 선생님은 그게 생각이 많아서 라고 했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은 내가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담백해져야 하는 문제다. 












아무튼 그렇게 10월30일 오늘 9주차를 맞았다. 


교수님께서 내가 정말 쌩 오리지날 연기 초짜라는 걸 이제 인식하신 건지, 
앞에 선 나로부터 안쓰러움을 캐치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가벼운 이야기로 긴장을 풀어주셨다. 

연기를 처음 한다고 해서,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라고 생각하지마. 
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연기의 수준 차이만 있을 뿐이야. 
처음 하더라도 겁먹을 필요가 없어. 



오늘 시연에서는 기본적인 단계를 많이 짚어주셨다. 
하지만 그 것만으로도 쓸 게 또 산더미다. (웃음)








1. 


감정이입은 금방 잘 되는데, 또 금방 사라져버리네. 

관객에게 뭔가 줄 것 같은데 다시 안으로 들어가버려. 

감정을 아낌없이 줘, 관객에게.

애인에게 아낌없이 주듯이. 




2. 


진짜로 눈을 보고,

진짜로 말을 걸어.




3. 


말끝(~요)을 일부러 만들지마. 

그냥 흘려보내. 

그게 아니면 의도적으로 만들 수도 있고. 




4. 


갑자기 누가 너한테 다짜고짜 욕을 하면 어떨 것 같아?

당장 들이쉬는 숨부터가 다를 거야. 

분노의 숨 혹은 황당함의 숨으로. 


화날 때, 얼굴만 화나? 상체만 화나?

아니지, 온몸으로 화가 나지.

기분 좋을 때, 얼굴만 좋아? 상체만 좋아?

아니지, 온몸으로 좋은 거지.


"싫어요." 라고 말하면서 왜 얼굴만 싫다고 해?

"싫어요." 라고 말할 때는 온몸으로 싫어해야돼.


소리는 온몸으로 내는 거야.

예를 들어, 숨을 마실 때는 엉덩를 풀었다가, 말할 때는 조여줘야돼. 

배에 힘이 있어야 소리도 힘있게 나오고. 


정인이는 지금 몸의 운동성, 활동성이 너무 떨어져 있어. 

연기를 하는 사람의 신체가 아니야. 

항상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의 신체상태야. 




5. 

소리가 목에 머물러 있어. 

혼자 말하는 것 같아. 

그냥 말하는 게 아니야. 

확실하게 관객에게 줘야돼. 

말을 갖고 있지마. 

말은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달하려고 뱉는 거잖아.

평소에 또박또박 상대방에게 분명히 전달한다는 생각으로 말하는 습관을 가져.



6. 

평소 실행력이 약하지?

생각은 많고, 행동은 안 하고.

명사(주어)는 힘이 들어가는데, 동사(서술어)는 확 죽어.

대사가 용두사미야.

관념만 가득하고 그걸 외형으로 드러내질 못하고 있어.




7.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소극적이야. 

다른 사람의 예상치보다 항상 더 나아가.

배우는 기본적으로 무대에 던져지는 사람이야. 

그렇게 몸을 던지다가 다치기도 하고, 상처도 받기도 해. 

근데 그게 배우야. 




8. 


액팅 자체로는 전달이 안 돼.

액팅에 담긴 너의 감정, 의도가 훨씬 중요해.

그 감정, 의도를 액팅으로써 관객에게 전달시키는 게 더 중요하고.

무대 위에서 '그냥 걷는 것' 없어.

걷기만 해도 '아~ 저 배우가 어떤 캐릭터구나' 관객이 알 수 있어야돼.




9. 


(뒤를 볼 때) 몸을 트위스트 하지마. 

그러면 연기하기 위해 보는 것 같아. 

왼쪽 뒤를 볼 때는 오른발→왼발로. 




에필로그. 


평소 성격부터 삶의 태도, 언어 패턴, 습관 등이 그대로 노출돼서 또다시 민망했다. 


내가 생각해도 몰입이 안 되어 있다고 느낄 때는, "다시."

내가 생각해도 몰입이 되어 있다고 느낄 때는, "좋아."

무서운 교수님. 


윤제문 씨에 대해 꼭 질문하고 싶은데...




교수님의 에필로그. 


사람들 앞에서 "(여유있게 미소지으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라고 말하는 거, 의외로 쉽지 않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하면서 말하는 거,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보통 말할 때 보면 자기 말을 의식을 못한다.  

즉, 보통은 말할 때 정신을 잃어. 

하지만 배우는 정신차리고 말할 수 있어야돼. 


배우가 된다는 건 삶을 바꾸는 거란다. 

단순히 진로를 바꾸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바꿔야 배우가 될 수 있다. 


배우로서의 사명감. 

관객 한 명이 나에게 2시간을 내준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 관객 한명, 한명의 2시간이 모두 모였다고 해보자. 

절대로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시간이다


TOP SECRET. 

사실 말은 몸으로 하는 거야. 

말을 기가막히게 잘하는 배우를 보면, 분명히 몸과 매우 조화롭다는 걸 알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