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기술-/중앙대 연극학과-

[5주차] 사색의 주

봄엔꽃을 2013. 10. 2. 16:16

그 동안 신체를 움직인다,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생각에 너무 빠져있었던 것 같다.

다른 학생들의 시연이 평가받는 모습을 한 번 더 보면서 치열한 고민을 절감했다.

이번 주에는 가벼운 마음이 보다 진중하게, 급했던 마음이 보다 겸손하게 변했다.

 

 

 

 

 


 

 

 

 

 

오랜만에 몸풀기 운동 후, 수업 시작.

 

일명, 악마의 유혹.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한 명은 악마, 한 명은 인간 역할.

악마는 손, 손가락으로 인간을 마음대로 조종.

인간은 악마의 손짓에 몸을 움직임.

대화 없이 오로지 동작만으로 진행.

 

난 인간을 맡았다.

몇 분이 지나간지 모를만큼 스스로는 집중했다.

땀을 흠뻑 흘렸다.

모든 팀이 마치고 모두 돌아가며 코멘트를 했다.

 

제가 할 때는 제가 악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지, 홀린 건지, 뭔지 설정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한 게 아쉽다. 그리고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악마의 지시에 따라 인간이 움직인다' 라는 약속이 안 드러나게 한 팀에게 몰입도가 높았다.

 

교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전자의 경우) 지금 같은 상황에는 오히려 설정이 없어야 한다.

(후자의 경우) 오히려 '액션이 좋았던' 팀보다 '정지가 좋았던' 팀이 더 몰입됐다.

 

즉 몸짓으로 끌어당기는 것 보다 때로는 액션의 정지상태가 주는 효과가 더 크다는 뜻이었다.

여백이 관객을 몰입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 파트너의 코멘트 또한 의미있었다.

 

나의 상상대로 상대방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상상력의 한계인가 싶었다.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되짚어보니 난 파트너의 손만 보면서 나의 움직임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한 번도 파트너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파트너가 어떤 악마일까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인간일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아무튼 오늘 몸풀기에서 나는 잘 못했다.

기가 죽은 채로 수업에 들어갔다.

아무튼 이제 몸풀기 시간 조차도 전공수업의 위엄이 전해진다. (웃음)

 

 

 

 

 


 

 

 

 

 

본격적으로 수업 시작.

각자 정한 파트를 시연하는 것.

 

오늘도 내 차례가 안 올 것 같아서 아쉬움 반 실망 반.

대사도 다 외웠고, 서툴게 보일지라도 교수님의 피드백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팀, 한 팀 지나가면서 다행이다 싶었다.

오늘도 시작 부분부터, 아주 작은 부분부터 교수님의 피드백이 속사포 처럼 이어졌기 때문이다.

초짜인 나는 한 주라도 더 연습하고 교수님 앞에 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교수님에게 배운 것 정리.

근데 오늘은 너무 많은 코멘트와 피드백이 이어져서 도저히 머리에 다 담지 못했다.

 


 

1. 몸풀기 시간에 대하여

 

몸풀기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마라.

항상 자기최대치를 보여줘라.

한 명이 설렁하면, 다른 사람도 설렁하게 된다.

평소에도 마찬가지다.

시덥잖은 말 하지 말고, 연기에 대해 말해라.

놀 때도 연기에 도움이 되도록 얼마든지 놀 수 있다.

잠잘 때를 빼놓고, 의식이 있는 한 늘 연기를 의식해라.

배우는 모두가 그냥 지나치는 것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감정을 느끼고 인생까지 논할 수 있어야 한다.

배우라면 아우라가 있어야 한다.

(아우라를 후천적 노력을 통해 풍길 수 있다는 뜻인 것 같다)

 

 

 

2. 화술

 

대사는 어떤 배우가 상대 배우에게 바로 말하는 게 아니다.

관객을 거쳐 상대 배우에게 말하는 것이다.

 

대사를 할 때, 상대방의 대사를 형식적으로 받지 마라.

상대방의 대사 속에 있는 에너지, 감정선을 받고 고려해서 자기 대사를 해야 한다.

 

화술의 근본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바로 하체.

하체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지 못하면, 절대로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

화술은 그냥 말하는 게 아니라 몸을 통해 말이 나오는 것이다.

좋은 몸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가 없다.

 

배우의 가치는 대사를 어떻게 재창조 할 것인가에 따라 달렸다.

일반적인 재료(대사)를 가지고 어떻게 가치있는 요리(재창조)를 만들어 낼 것인가가 문제다.

일반인이 '저정도는 나도 하겠다' 라고 느끼면 안 된다.

쉬워보여도 막상 실제로 따라 해보면 이상하게 잘 안 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대사를 잘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대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문제다.

소리지르는 대사를 하기 전, 이미 그 태도가 내 몸에 나타나고 있어야 한다.

말로써 잘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우선해서 태도를 고려해라.

 

 

3. Acting Is Believing. 연기는 믿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연기 그런 걸 왜 하는 거야? 그런 걸 왜 봐?'

'연기 다 가짜잖아?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하지만 가까인 걸 뻔히 알면서도 기꺼이 연기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저 배우가 진짜로 살인범이 아니고 실제로 그 인물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전자 같은 사람들도 있는 반면, 연기를 통해 감동과 위안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럴만한 가치있는 연기를 보여야 한다.

 

 

연기를 믿는 방법은 '그 공기'를 먼저 들이쉬는 것이다.

대사를 그냥 뱉지마라.

화를 표현하고 싶으면, 화의 공기를 마시고, 화가난 숨을 대사를 통해 뱉는 것이다.

행복을 표현하고 싶으면, 행복의 공기부터 마셔야 한다.

대사를 그저 말로써 뱉는 것은 거짓말이다.

관객은 바로 안다.

내가 먼저 믿어야 관객도 믿을 수 있다.

 

연기를 나의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대로 관객은 설득 당하지 않는다.

말만 진짜처럼 하면 뭐하나?

목 아래부터는 전부 가짜인데.

 

 

 

4. 그 밖의 조언

 

때로는 표현'한다'기 보다 표현'된다'는 느낌으로 연기해라.

내가 믿고 있는 것을 관객이 알아차리게 한다는 말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면 관객은 재미없어 한다.

이러한 '관객과의 밀당'을 잘해야 그 배우에게 끌린다.

그 배우를 검색하고, 그 배우를 또 찾게 된다.

 

배우는 상황에 완전히 빠져든 것처럼 보이되 실제로 빠져서는 안 된다.

내가 어떻게 얼만큼 빠져들었고, 또 그것을 관객이 느끼는 것까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액션의 맺고 끊음을 확실히 해라.

액션을 흐리멍텅 하게 끝내거나, 어물쩍 이어가면 관객이 몰입을 못하고 헷갈린다.

할 때 확실히 하고, 끝낼 때 확실히 끝내야 전달력이 생긴다.

 

집중하라는 말은 긴장(tension)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떤 것에 꽂혀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여러분이 포식자이고 먹잇감에 집중해서 접근하고 있는데,

만약 또 다른 포식자에게 먹혀버린다면?

그건 우리가 원하는 집중이 아니다.

주변의 모든 상황을 기민하게 파악하는 상태가 우리가 원하는 집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