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11 - 17, 미얀마(양곤) - 태국(방콕)
2010-11-11
11-17
1. 미얀마 양곤에서의 1박2일
미얀마 양곤에서 1박2일 잠깐 머무르게 됐다. 도착하기 전, 막연하게 불안했다. 미얀마라는 나라가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군부독재국가,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엉켜있었다. 그런데 가이드북을 통해 실체가 명확히 보이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군부독재국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치안이 더욱 안전하다.
미얀마 사람들은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는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선하며 관광객들에게도 친절하다.
맞다. 국민들이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나쁜 짓을 하지 못한다. 또 불교 자체가 삶이기 때문에 함부로 남에게 악한 짓을 저지르지 못한다. 역시 막연하게 불안해질 때에는 그 실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불교는 미얀마인의 삶 속에 상상이상으로 깊이 박혀있는 것 같았다. 미얀마에서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활양식이자 삶 자체였다. 남자-여자 할 것 없이, 노인-꼬마 할 것 없이 어디에서나 승려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발걸음이 쉐다곤 파고다에 이르자 그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불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물론 신성함 유지를 위해 맨발로 가야 한단다. 힘이 들지는 않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양곤 안의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디뎠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황금빛 불탑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웅장했다. 여행자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많은 현지인들이 이쪽 저쪽에서 불상 앞에서, 향을 피우면서 정성스레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중앙에 있는 불탑이 실제로 황금판으로 둘려져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기겁했다. 망원경을 통해 그 꼭대기에 솟아있는 봉우리를 볼 수 있는데, 그 봉우리야 말로 온갖 초호화 보석을 휘감고 있다는 사실에 입이 벌어졌다. 물론 나에게는 부정적인 의미의 놀람이었다. 만리장성 그 자체보다 만리장성을 쌓은 대중의 힘이 더 위대하다고 하듯이 저 거대한 것을 세우고 유지하는 대중의 피와 땀에 더 마음이 갔다.
가뜩이나 종교에 부정적인 나로서는 이쯤 되니 삐딱한 생각이 들었다. 불교가 미얀마를 지탱하는 힘이 아니라 미얀마 국민을 억압하는, 너무 거대해서 보이지 않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에 불만을 품을 수 없게 만드는,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그런 장치 말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에게 황금불탑을 비롯해 수많은 불상을 보며 저것이 다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번듯하게 지은 교회건물을 볼 때도 비슷한 의문이 든다) 삶이 어려움에 처할 때, 국가에 불만을 표하거나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잠재가능성을 불상 앞으로 시선을 돌려놓은 듯이 보였다. 물론 불교의 일상화가 주는 긍정적인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속단하고 싶지 않다.
한 개인이 있다. 그 사람은 혹시 가난할 수도 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자신의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 수 없이 많이 존재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인의 노력과 의지에 상관 없이 가난과 고된 삶이 지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는 것이다.
힘들게 노동하는 사람이나 기운 없이 초췌한 모습의 사람을 보면서 혹시 그들이 ‘현재 삶이 고된 것은 전생에 죄를 지은 탓이다’ 라고 생각할 까봐 안타깝다.
물론 어두운 면만 보였던 것은 아니다. 내 또래의 청년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통나무를 나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문득 ‘저 친구는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20대를 보내고 있는 청년의 기준으로 봤을 때에 그 친구는 불행해야 한다. 행색으로 보아 알바 수준이 아닌 생계수단으로써 노동을 하는 듯 보였다. 그 친구는 더 나이를 먹고도 계속 고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갈 것인가, 또 어떻게 가정을 꾸릴 것이며 어떻게 노후를 보낼지 내가 더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또 한편으로는 살갗을 구워버릴 듯한 땡볕 아래에서 무거운 짐을 어깨에 들쳐 멘 그 친구가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미래에 저당 잡혀있는 한국의 20대 그리고 내가 현재를 대하는 자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조금은 씁슬한 일이 있었다.
쉐다곤 파고다의 계단을 오르던 중 누가 우리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 일행 중 한 여성에게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웃으며 말을 걸었다. 내 또래의 남자 승려였다. 계단을 함께 오르고 나서는 우리에게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미얀마 사진사를 연결시켜주는 브로커 아닌가 순간 의심했다.
“It’s for me.”
자신이 지불하고 찍는 사진이니 함께 해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괜히 의심해서 미안했다. 그 승려는 자신이 다른 곳을 가이드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막 불탑에 도착한 사람들한테 다른 곳을 안내하겠다니 좀 이상했다. 아무튼 우리는 우선 이곳을 둘러보고 나서 따라가겠다고 했다. 은연중에 사라질 줄 알았던 그 승려는 쉐다곤 파고다를 둘러보는 내내 동행하며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제안대로 근처 공원을 같이 둘러봤고 같이 택시로 이동해서 시장도 한 바퀴 돌며 구경했다.
나는 처음에 그의 접근을 여행객들과의 친근함 혹은 한국 여성에 대한 호감으로 인한 일시적 친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탑을 나와서 한동안 계속되는 동행에 정체가 궁금해졌다. 지금 이 시간에 낯선 여행객들과 함께 할 만큼 여유가 있는지.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하지만 호의를 베푸는 승려에게 무례함으로 보답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지 못했다. 게다가 인상도 좋고 더구나 승려이기 때문에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 몇몇은 다시 호텔에 가야 했기에 택시를 잡고 출발하려던 찰나. 더듬더듬 쭈뼛쭈뼛 어색하게 웃으며 그 승려가 말문을 열었다.
“If you don’t mind… ….”
괜찮다면 도움을 받고 싶다고 했다. 어떤 도움이냐고 물으니 돈이라고 답한다. 말하자면 자신이 영어공부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후원해달라는 뜻이었다. 7명이 1달러씩 걷어서 줬다. 1달러는 작은 돈일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돈일 수 있다. 그러나 양곤에서 현지인이 한 번에 7달러를 수확했다는 건 상당히 큰 돈이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굳이 돈을 요구하지 않았어도 고마움의 표시는 했을 텐데. 게다가 승려가 자기 개인을 위해 도움을 바라다니. 친구들끼리였으면 그냥 가버렸거나 1달러 정도 쥐어줬을 거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처음 본 사람들이어서 1달러 때문에 쪼잔 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서, 즉 남의 시선이 의식돼서 에잇 1달러 하는 심정으로 주었다. 나는 그 승려의 소프트 파워에 속은 거나 다름 없었다. 건실해 보이는 이미지. 서글서글한 인상. 무엇보다 승려라는 점. 역시 그 사람의 본질은 결정적인 행동에서 드러난다. 우리와 동행한 시간 내내 친절하고, 호의적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결국 그가 요구한 것은 돈이었다. 친구관계에서도 적용된다. 평소에 내게 아무리 잘 해주고 친한 친구라도 결정적인 순간 나에게 등을 돌린다면 그 친구의 본질은 더 이상 나와 친구가 아닌 것이다. 내 손에서 나간 건 단지 1달러였지만 불편한 마음은 컸다.
호텔에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소프트 파워에 속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체크아웃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 이유는 식사값 때문이었다. 메뉴판에는 미얀마 화폐단위로 나와있어서 아무런 계산 없이 그냥 먹었었다. 자연스럽게 얼마 안 비싸겠거니 느껴졌다. 말이 호텔이지 시설은 조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끼에 약 5.5달러 정도 치른 것 같다. 바가지를 썼다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유쾌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낯선 땅 낯선 호텔에서 환하게 웃으며 한국말로 맞이해주신 사장님. 이미 그 순간 마음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1박2일 내내 사장님 부부는 상당히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가격대비 시설은 조금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으나 한국인 사장님이 존재한다는 로열티로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요점이 무엇이냐. 무엇 때문에 속은 느낌을 받은 것이냐. 메뉴판의 가격표시, 그뿐이다. 달러가격만이라도 표시가 돼있었 다면 전혀 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속았다는 표현이 과할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사장님의 호의와 친절에 잠시 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
사람들이 무리 지어 격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근데 택시를 타고 가도가도 행렬이 끝이 보이질 않았다. 장난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바로 아웅 산 수 지 여사의 석방일 이었다. 나도 들뜨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적인 날 내가 이 곳에 있다니! 그러던 중 흥분상태인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차분해 보였다. 이상하다! 이곳은 군부독재국가가 아닌가! 수도 한복판에서 대규모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정부의 상징적인 한 인물의 석방일에 들떠서 모여들고 있는데! 우리나라였으면 전∙의경이 순식간에 깔렸을 텐데! 아무튼 아웅 산 수 지 여사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대중들에게 굉장한 지지를 받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2. 카오산 로드 VS 청계천 거리
카오산 로드의 존재를 방콕에 가면서 이번에 처음 알았다. 뭔가 굉장히 특별해 보였고, 기대감을 품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카오산 로드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개성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실망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궁금했다. 평범할 수도 있는 이 작은 동네가 왜 전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집결지라 불릴 만큼 유명해졌을까?
상당히 발전한 방콕 시내를 먼저 봐서 그런지 그에 비해 카오산 로드는 상대적으로 허름했다. 하지만 훨씬 매력적인 마을이었다. 즉 개발 정도를 느끼게 해주는 빌딩 숲 밖에서 진짜 여행 왔다는 느낌을 주었다. 번듯한 현대식 건물 대신 노천식 가게와 각종 과일이나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었다. 이 또한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태국식이다! 이제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해준다! 빌딩은 우리 집 앞에도 널렸다. 오히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곳이 여행객들의 발을 묶고 있다고 생각했다. 태국 냄새가 났고, 태국 맛이 났다. 이곳의 수많은 상인들과 주민들은 자생적으로 그들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만약 이곳에 개발 바람이 분다면? 당연히 발길은 끊길 것이다!
카오산 로드를 통해 청계천 거리를 돌아보게 된다. 청계천 거리, 매우 깔끔하고 세련됐다. 잘 꾸며놨다. 사실 나도 종종 걸어다닌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딱 그뿐이다. 청계천 고유의 매력이 있는가? 오히려 애초에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쫓겨났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한국에 와야만 느낄 수 있는 채취가 사라졌다. 지금의 청계천은 어디를 가더라도 있을법한 분위기를 풍긴다. 공권력이 청계천에 손대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이 아니다. 청계천만의 매력을 만들어낼 원동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고 지원을 했어야 옳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끼리 판단하고 계획하여 선을 긋고, 자르고, 만드는 행위는 대중을 기만하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 옳은 것은 아니다. 청계천의 예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니 세계적인 관광지로서의 잠재력이 듬뿍 느껴졌다. 만약 현명한 행정가의 손길이 더해졌다면.... 아쉬울 따름이다. 개발이 항상 인간에게 혜택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고보면 청계천 사업도 그렇고 4대강 사업도 그렇고 개발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을 피한다. 굳이 복원, 생태, 살리기 등의 말을 붙이려고 한다. 왜 떳떳하게 개발한다고 말을 못하는지.... 찔리는게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