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기술-/중앙대 연극학과-

[마지막 16주차] 처음엔 보통 일이 아니지만, 지나고 나면 다 보통 일이 된다.



[1] 마지막 수업


기말고사 시험날이자 진짜 마지막 수업이다. 

특별할 것은 없다. 

학생들의 시연이 중간에 "스톱" 없이 끝까지 이어질 뿐이다. 

순서는 따로 없고, 자율적으로 알아서 시작하면 됐다. 

마음 같아서는 맨처음에 해서 빨리 끝내고 싶었다. 

빨리 해야 빨리 잊혀질 것 같았고, 뒤로 갈 수록 더 심장이 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 날까지도 잠을 설쳤다. 

연습할 공간이 없으니 계속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수밖에. 






[2] 긴장을 운동성으로 


순서가 계속 지나갔다. 

수업 초반 때처럼 긴장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이 긴장을 억지로 없애려고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에는 긴장이 생기면 늘 억제하려 들었지만,

연기할 때는 긴장을 운동성으로 전환시켜 보자!


그렇게 뛰고 있는 심장을 자연스럽게 바라보다가 중간 순서쯤 앞으로 나갔다. 

시연이 시작됐고, 작전이 성공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시연 때는 느껴보지 못한 운동성이 나 스스로도 인식되는 기분이었다. 

손이 떨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웃음)

대사는 예전에 이미 다 머릿속에 있고, 액팅도 준비한 대로 실수없이 끝냈다. 

단 몇 분이지만 내 연기를 사람들 앞에서 집중된 상태에서 끝까지 해보였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3] 칭찬, 칭찬, 칭찬, …


학생들의 시연이 다 끝나고, 교수님께서 한명 한명 피드백을 해주셨다. 

시연 자체는 초심자 수준이었지만, 나는 은근히 칭찬을 기대했다. 

사실 한 학기 동안의 시연 중 가장 잘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웃음)

맨 처음 시연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일 정도로 발전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 이런 언급을 하면서 칭찬을 해주시길 바랐다!

나도 앞의 두 학생처럼 '일취월장 상'을 받고 싶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정인이 많이 좋아졌다. 그치?

처음에는 소리도 잘 못내던 애가.


근데 말 하기 전에 이상한 소리를 내.

"으~" 하면서.


그냥 그렇게 끝났다.....

더 칭찬 받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 

칭찬에 목말라한 적은 진짜 처음인 것 같다. 

칭찬, 칭찬, 칭찬, 






[4] 아름다움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있어. 일상을 용서하지마. 


교수님의 마무리 멘트가 이어졌다. 

사실 교수님의 심기가 좋아보이진 않았다. 

한 학기 내내 출석율이 저조하고, 수업 분위기도 좋지 않았는데, 

마지막 기말고사 시간조차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중앙대 연극학과 학생들에게는 가용자원이 많지만 그만큼 집중도도 떨어졌다는 의미였다. 

교수님께서 수업을 나가는 타 대학에서는 실기수업이 유일해서 집중도가 엄청나다고 했다. 


연기를 한다는 건, 배우의 자존심이야.

아무리 작은 무대, 적은 사람 앞이라도.


예술은 자연스러울 때까지 인위적으로 만드는 거야.

사람들은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거고.


아름다움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있어.

여러분의 일상을 용서하지마.

최고 중의 최고만 모인 볼쇼이 발레단 안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어.

최고만 모아놔도 또 그 중에서도 좋은 무용수가 따로 있다니까?

일상부터가 달라.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흐트러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은 무용수들은 일상에서도 계속 무용수인 거야.

좋은 배우가 될 수밖에 없게끔 살아.






[5] 오빠 연기하는 거 보고 많이 배웠어요. 


결국 한 학기 동안의 수업이 종료됐다. 

시원하고도 섭섭했다.


학기 초반에 다른 타학과 형이 나보고 대단하다고 했다. 
어떻게 한 번에 덜컥 연극학과 실기 수업을 들을 생각을 한 것이냐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금새 깨닫게 됐다. (웃음)

일반 학과 학생들에게 보통 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 지나고 보니 보통 일이 됐다.


결국 소녀시대 수영과는 인사 한 번 주고 받지 못했다. (웃음)

연극학과 학생들 하고도 거의 교류가 없어서 아쉬웠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에이스였던 학생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오빠 연기하는 거 보고 많이 배웠어요.

독백, 어려운데도 잘하셨어요.

오늘 정말 잘하셨어요.


에이스한테 이런 칭찬을 받다니!

나의 칭찬 결핍을 보충해줬다!

그런데 이후, 몇 번 더 똑같은 말을 들었다. 

(그 중에는 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학생도 있어서 기쁨이 더 컸다!)

오빠 연기하는 거 보고 많이 배웠다고.

처음에 얼마나 못했으면. (웃음)






[6] 성장



성적은 별로 상관없었지만, 감사하게도 A+를 주셨다. 

평가의 기준이 연기의 수준이 아니라 성실도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수업을 듣기를 잘했다. 

수강신청 기간에 그렇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기말레포트에 쓴 대로, 나는 이 전보다 괜찮은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김소희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먼저 웃어주고, 챙겨준 몇 몇 학생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