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란 무엇인가.
상담기법의 하나로 증흑극을 활용한 것이다.
주인공(환자)이 원하는 대로 상황과 역할을 설정하고, 현재 느끼는 대로 극을 진행한다.
주인공과 상대방은 중간중간 역할을 교환해서 연기하는데, 이를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2009년 <무한도전> 정신감정 특집에서 사이코드라마가 등장했었다.
이를 테면, 박명수 씨를 앞에 두고 노홍철 씨가 '박명수'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2013년11월18일(월), 저녁 8시~10시, 액션가면 소극장에서
청소년상담사 김동현 선생님께서 진행해주셨다.
나까지 총 9명이 참여했다.
난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또 하나는 정말 심리치료 효과를 볼 수 있을까 해서.
1. 간단한 몸풀기
2. 간단한 자기소개
3.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 나누기
4. 주인공 이야기로 사이코드라마 진행
5. 소감 나누기
처음에는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그러다가 눈 마주치는 사람과 인사했다.
악수를 하거나, 발이나 어깨를 부딪히는 식으로.
간단한 자기소개에 이어 각자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연없는 사람 없다더니 역시 저마다의 아픔, 상처, 고민들이 있었다.
회사 파트너와 불화가 있다.
사회생활 하면서 '관계' 라는 게 너무 힘들다.
과거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는데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어서 충격이었다.
- [1번] 남. 34살. 직장인.
겉은 늘 웃고있지만 속은 늘 억압돼 있다.
참는 게 습관이 됐다.
여러 감정들을 분출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 [2번] 여.
자존감이 굉장히 낮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이렇게 오늘처럼 낯선 사람들과 있는 자리가 사실 굉장히 불편하고 어색하다.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우울하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
- [3번] 남. 20대. 대학생.
얼마 전 좋아하던 여자와 잘 안 됐는데 잊혀지지가 않는다.사실 그 과정에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과거에는 여자친구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는데,
계속 이런 일을 겪다보니 여자에 대한 벽이 생겼다.
- [4번] 남. 직장인.
직장에서 자기주장이 강한 편인데 일상에서는 의사표현이 약하다.
어머니나 친구들과 얘기하다가도 나와 생각이 달라도 잘 표현하지 못한다.
그들이 상처받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내가 참고 받아들인다.
- [5번] 남. 40대. 직장인.
현실(현재)에 충실하면 고민이 적어진다는 말을 실천 중이다.
- [6번] 남. 25살.
얼마 전, 20살의 어린 동료가 하늘나라로 갔다. 그 아이가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동안 옆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하지만 결국 죽었다. 신이 굉장히 원망스러웠다. 사람은 저마다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렇게 일찍 죽은 아이는 쓸모 없었던 사람인 것이냐. 그 보다 더 어린 아이의 죽음의 경우도 있는데 그런 아이들은 도대체 왜 태어나게 한 것이냐.
- [7번] 여. 22살.
하나는 오늘 회사에서 상사한테 너무 급작스럽게 생각지도 못한 일로 깨졌다. 너무 황당하고 화가났다. 다른 하나는 사실 살면서 여태까지 한 번도 사랑받았다는 생각을 못 해봤다.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사랑 받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
- [8번] 여. 직장인.
주인공은 8번 분으로 결정됐다.
주인공르로 결정되면 그 사람 소위 털린다. (웃음)
자신의 문제를 최대한 알려줘야 오늘 모인 사람들과 원활히 극을 진행할 것 아닌가.
8번 분이 원하는 상황은 가족, 친구들이 모여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장면이었다.
부모님께서 한 번도 자신의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다고 했다.
주인공이 각자의 역할을 지정해줬다.
아버지, 어머니, 친구 등
나는 주인공의 남동생 역할이었다.
참여자들끼리 즉흥적으로 주인공의 생일축하 자리를 꾸며나갔다.
중간에 주인공이 아버지 역할과 역할교환을 했다.
아버지로부터 듣고 싶었던 말을 주인공 자신이 말한 뒤,
다시 아버지 역할을 맡은 사람이 돌아와 그대로 주인공에게 해주는 식이다.
이제는 갈등의 핵심인 부모님 역할만 남기고 나머지는 들어갔다.
부모님 역할은 의자 위에 올라가 큰 목소리와 몸짓으로 주인공을 아프게 했던 말들을 했다.
어릴 적 아무 말도 못하고 무작정 혼나기만 했던 주인공의 내면을 다시 건드렸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런 부모님에게 대항하고, 반박하고, 화를 내봄으로써
그 때의 아픔을 깨버리기 위함이었다.
억압당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몇 명이서 앉아있는 주인공을 위에서 짓눌렀다.
때로는 주인공이 소리를 지르고 도구를 바닥에 내리치며 더 몰입하도록 했다.
주인공의 분노가 명확히 전달될 때마다 부모님 역할은 의자에서 내려오고, 톤을 낮추고, 듣는 시늉을 했다.
한바탕 분풀이 시간이 지난 후, 화해의 장면을 이어갔다.
이 때도 주인공은 딸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도 역활교환을 통해 자신이 말한다.
다시 부모님 역할이 그 말을 주인공에게 해준다.
차마 부모라서 어쩌지 못했었어...
정말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냥 이젠 사랑하고 미안하다는 한 마디면 될 것 같아...
주인공이 떨리는 목소리로 진심을 내뱉었다.
부모님 역할이 주인공에게 사과하면서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주인공은 품에 안겨 울었다.
8번 분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으면서 생각보다 커다란 상처를 발견했다.
단순히 사랑 받지 못한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그 지난한 날들을 살아온 주인공에게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사실 8번은 첫 인상이 매우 좋았다.
내 생각에 오늘 모인 사람 중에 가장 인상이 좋았다.
곁에 있는 사람이 웃음이 나는 그런 밝고 유쾌한 이미지였다.
부모님에게 사랑도 많이 받으며 긍정적으로 자란 것 같았다.
그런데 어린 시절 죽음을 생각할 만큼 힘들고 아팠다고 했다.
오늘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겠다.
부모님이 지금도 그런 모습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큰 아픔,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다니 정말 반전이었다.
끝으로 간단히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조언해서는 안 된다.
자기 생각과 느낌만 말하면 된다.
이 것으로 오늘 특강이 마무리 됐다.
사이코드라마에는 심리치료와 연기라는 두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내가 느끼기에 목표는 심리치료이고 그 수단으로 연기를 가미하는 것이었다.
만약 연기적인 요소만 보고 간다면 말리고 싶다.
내가 주인공을 안 맡아서 모르겠지만, 어쩄거나 효과는 꽤 있을 것 같다.
물론 지속적으로, 더 깊게 진행되야 진짜 효과를 보겠지만.
아쉬운 점은 시간의 제약 때문에 한 명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내면을 너에게 보여준다는 건 실로 대단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어떤 조직의 구성원들이 사이코드라마를 함께 해본다면 굉장한 효과를 볼 것 같았다.
누나인지 동생인지 모를 오늘 주인공을 맡았던 분, 토닥토닥.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