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 틀에 갇혀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전주까지 가려고 한다면 무조건 효율적으로(싸게, 빨리) 가는 걸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렇게 되면 서울과 전주 밖에 못 본다.
중간은 생략된다.
오로지 목적지에 도착할 생각만 한다.
중간과정을 즐기지 못한다.
결국 전주에 도착했을 때는 허탈해진다.
목적지까지 가는길에서 어떤곳에 들러 맛있는 걸 먹고 갈 수도 있다.
그 곳이 맘에 들면 하루 묵고 갈 수도 있다.
그러면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목적지까지 훨씬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다.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이제 더 멀리 갈 수 있는 내공이 쌓인다.
목적지에 너무 얽매이지 마라.
도달하는 과정에서 목적지가 바뀔 수도 있고, 많은 재밌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 김성환
그래,
우리는 길을 가면서 하늘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가끔 뒤도 돌아볼 수 있다.
왜 우리가 앞만 보고 목적지까지 달려가야 하지?
누가 우리에게 앞만 보고 최대한 빨리 그곳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했지?
아름다운 시 한편 소개합니다.
자화상
사람들은 앞만 보고 부지런히 나를 앞질러 갔습니다.
나는 산도 보고 물도 보고, 빗줄기가 강물을 딛고 건너는 것도 보고,
꽃피고 지는 것도 보며, 깐닥깐닥 걷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갔지요.
난 남았습니다.
남아서, 새, 어머니, 농부, 별, 늦게 지는 달, 눈, 비, 늦게 가는 철새, 일찍 부는 바람, 잎 진 살구나무랑 살기로 했습니다.
그냥 살기로 했답니다.
가을 다 가고 늦게 우는 철 잃은 풀벌레처럼
쓸쓸하게 남아
때로, 울기도 했습니다.
아직 겨울을 따라가지 않은,
가을 햇살이 샛노란 콩잎에 떨어져 있습니다.
유혹 없는 가을 콩밭 속은 아름답지요.
천천히 가기로 합니다.
천천히, 가장 늦게 물들어 한 대엿새쯤 지나 지기로 합니다.
그 햇살 안으로 뜻밖의 낮달이 들어오고 있으니.
- 김용택